농촌에 기설된 진흥회, 교회 같은 기관의 원조를 받아 단순히 글자만 가르치면 우리의 목적은 달하리라고 믿는다. 기애도, 「상록수론」, 숭실어문- 제21, 숭실어문학회, 2005, p.10(재인용).
위 글에서 나왔다 시피 브나로드 운동의 한계는 바로 문자보급 및 문맹퇴치에 있다. 그래도 사회주의적 색채를
《상록수》의 작가이기 이전에 일제 강점기 한 지식인으로서의 심훈을 먼저 공부함으로써 《상록수》의 심훈이 아닌 ‘심훈의 《상록수》’로 접근하는 데서 시작을 하려 한다. 그리고 소설에 나타나는 여러 배경을 알아본 후, 《상록수》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인 계몽운동을 소개하겠다.
Ⅰ. 서론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것이 동시대사에 속하기 때문에 간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그 신화를 벗김으로써 현실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평가의 터전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현실에 기초하여 여기에서 시도되는 평가는 도덕적 평가가 아닌 역사적 평
뒷받침이 된다. 빈궁한 가난과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등 불운했던 환경은 그가 십대 후반에 가출을 시도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가출한 동안 수년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각지를 방랑하며 농촌에서 품팔이, 토목공사장 노가다 패의 통역, 유성기를 든 약장사 등 다양한 인생경험을 한다. 191
운동 제기 동기에서의 선정 요인 중 도덕적 퇴책에 대한 저항이란 각도에서 심각한 문제로 시종 외쳐지고, 또 세계에 통지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1940년까지의 한국교회의 사회운동은 사회봉사, 사회사업, 사회개선, 그리고 절실한 당신의 민족적 사활의 문제로 등장한 농촌운동의 형태로 나타났
기독교청년회’(지금의 서울YMCA)가 창립되면서 첫 모습을 선보였다. 이후 YMCA에 구한말 기독교에서 구국운동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민족지도자들이 대거로 가입함으로써 YMCA는 일제시대에 3.1 독립운동,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건립운동, 농촌계몽운동 등 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한국YMCA는
Ⅱ. 사회운동의 의의와 역할
NGO란 정부기관이나 관련 단체가 아닌 순수한 민간 조직을 모두 일컫는 말로 비정부 기구 또는 비 정부 단체라 한다. 꼭 국제활동을 하는 단체를 말하지는 않으며 정부운영기관이 아닌 시민 단체가 이에 해당한다. 보통 비 정부 기구들은 인권, 환경, 빈곤추방, 부패방지 등
Ⅰ. 들어가며
1919년 한국 기독교의 전폭적인 참여로 3.1운동이 발발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결과 한민족은 심각한 좌절에 빠졌으며 한국교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얻지 못한 좌절감과 가족과 교우와 이웃을 잃은 슬픔 속에 잠겨 있을 때 교회는 그들의 소망을 하늘
기독교도와 일반민중 사이에 심각한 적대의식과 충돌을 낳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19세기 말에 강화된 열강의 이권 획득 경쟁은 모든 불행의 원인이 서양의 진출에 있다고 생각하는 하층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다.1900년의 의화단 운동은 그러한 저항이 극단적으로 표출됨으로써 농촌사
(老祖師)로 불렀으며 그 아래 지도자들은 차례대로 대사형(大師兄), 이사형(二師兄)으로 불렀다. 또한 그들은 외국인들을 대모자(大毛子), 중국계 기독교인과 ‘외국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모자(二毛子), 수입품을 쓰는 사람들은 삼모자(三毛子)라고 부르고 모자를 제거대상으로 삼았다.